가파른 내리막길순례길의 대부분은 경사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해서 걷기 좋습니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도 있어 자칫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피레네를 오르내릴 때, 용서의 언덕에서 내려갈 때, 폰세바돈에 올랐다가 철의 십자가를 지나 내려갈 때, 오 세브레이로를 오를 때는 스틱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합니다.스틱은 스페인 현지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기내 반입이 되지 않습니다. 스페인 대도시마다 있는 용품점 ‘데카트론’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생 장 피에 드 포흐의 출발점 부근에서 살 수도 있지만 상당히 비싼 편
새 사진을 찍으려고 좇아다닌 지 3년째에 진기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매일 출근하듯 다니던 신대호수에 갈 때마다 보이던 왜가리. 그 왜가리의 둥지 만들기와 짝짓기를 처음으로 목격한 것입니다. 사실 이제껏 왜가리에 대한 인상은 거칠고 난폭한 호수의 깡패란 느낌이 강했습니다. 상상 이상의 기다림 끝에 날카로운 긴 부리로 물고기를 관통시켜 통째로 삼켜버리는 녀석이니까요. 그 인식이 확 바뀌었습니다. 사랑 할 때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부드럽게 변하는 면모를 보았기 때문입니다.갈대의 무성하던 잎이 사그라지고 앙상하게 남은 줄
왜가리는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하여 다른 왜가리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사냥을 위한 관찰 중에도 바로 침입자에 대응합니다. 즉시 침입자를 위협해 자신의 영역 밖으로 축출하는데, 만약 침입자가 도망가지 않고 버틸 경우 무자비하게 응징합니다. 즉, 억센 발로 상대의 날개를 짓눌러 말 그대로 물속에 처박고, 올라오면 다시 처박기를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상대가 도망가면 다시 사냥을 위한 관찰을 계속합니다.이런 사냥을 하지 않는 왜가리는 얕은 물가에서 지나가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물론, 사냥할 때의 신중함과 진지함은 높은 곳에서
6시간 동안 바위인양 숨죽여 물고기를 기다린 왜가리. 비로소 전광석화의 기술로 물고기를 잡아냅니다. 물고기를 안전한 곳에 내린 녀석은 먹이가 저항의 몸부림을 멈출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세히 보면 먹이를 아래위의 부리로 젓가락처럼 집은 것이 아닙니다. 마치 창으로 찌른 것처럼 먹이의 몸통을 날카롭고 긴 부리로 찔러 관통시킨 겁니다. 그러니 큰 덩치의 힘 좋은 붕어도 꼼짝 못하고 잡힌 상태로 있을 수밖에요. 먹이의 몸부림이 잦아들면 부리에 찔린 먹이를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입안에 넣는 재주를 부려 먹이를 머리부터 입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순례자를 위한 ‘여왕의 다리’‘여왕의 다리 마을’의 그 유명한 ‘여왕의 다리’입니다. 강을 건너다가 잘못 되는 경우가 많았던 예전엔 순례자를 위한 다리 건설이 최고의 자선이었답니다. 이 다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다리의 경당에 모셔진 성모자상에 작은 새가 매일 찾아와 부리로 강물을 떠와서 성모님과 아기 예수의 얼굴을 씻고 날개로 닦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새의 동정녀’라고 불리는 성모자상은 지금도 다리 옆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순례길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연이 깃든 곳이 여럿 있습니다. 나바레 지방.‘철
시골 마을의 아침몇 가구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에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여기 저기 집들이 흩어져 있는 우리와는 달리 순례길의 마을은 일정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외딴 집이라곤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순례길 마을의 특징입니다.주거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넓은 초원과 언덕 이곳저곳에 햇빛이 들 때면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이 넘쳐납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 오래 오래 머물고 싶어집니다. 갈리시아 지방입니다.독특한 곡물 저장고비가 많은 갈리시아 지방에는
함께하면서 따로 하는 지혜혼자 길을 가더라도 목적지가 같고, 겪는 일이 같고, 추구하는 바가 같으니 순례자들은 쉽게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함께 걷더라도 항상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동기와 몸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죠. ‘혼자 가도 함께 가고, 함께 가도 혼자 간다’는 말 그대로입니다.가끔 함께 걷다가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순례를 하노라면 함께하면서도 따로 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네바라 지방에서 찍었습니다.마을이 나타났을 때의 반가움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
암벽등반의 충동끝이 없을 듯 이어지던 드넓은 나바라 지역의 평원 앞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길게 이어진 암벽에 시선이 압도당했지요. 암벽등반의 충동이 올라왔습니다. ‘환갑을 지나 암벽등반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 등산학교의 입장이었지만, 편견을 이겨내고 뒤늦게 암벽등반을 시작했습니다.등반에 빠져 거의 매주 인수봉과 설악산을 오가며 새로운 도전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당장은 순례 중이지만 늦깎이 바위꾼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습니다. 희망사항이지만 다시 순례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고요하고 역동적인 일출의 황홀경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을 받으러 가는 시간입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막히는 것 없이 넓디넓은 벌판에서 햇님이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가슴은 마구 쿵쾅거리고 발걸음은 얼어붙어 버립니다.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사라집니다. 너무나 고요하지만 역설적으로 역동적이고, 거룩한 기운까지 느껴집니다. 그저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이내 또 무아경에 빠집니다. 순례길에서 느끼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여유